제비뽑기 정치

유명한 희극배우 러셀 브랜드가 한 호텔 방에서 텔레비전 인터뷰 도중, 환한 조명 속에서 거칠고 절박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말한다. “투표,그만 두세요. 제발 정신 차리세요. 현실을 직시하세요. 왜 투표를 합니까? 투표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거 우리는 압니다. 이미 잘 알고 있어요.” 그는 왜 투표를 하지 않느냐고 자신을 질책하는 질문자 제러미 팩스맨에게 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투표가 중요하고,정치적으로 진지한 사람이 되려면 투표를 해야 하며,만약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정치에 대해서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고 교육받으면서 자란다. 이 마지막 논리는 마치 아욱콩이나 꽃양배추를 먹어보지 않고서는 트집 잡지 말라는 부모님의 충고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부모님의 충고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우리가 꽃양배추나 아욱콩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가 주장하듯이,투표는 어리석은 짓이다. 투표 말고도 우리가 공적 문제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예를 들어,우리는 저명인사가 되어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서 혁명을 외칠 수 있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사회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추론하는 것은 빈곤한 논리이다. 브랜드가 지적하둣이,우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사회시스템이 행하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투표로써 그 일과 그 시스템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나의 한 표가 선거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내가 투표장으로 가는 길에 자동차에 치일 가능성보다 훨씬 낮다. 그러나 사람들 은 여전히 투표를 하러 간다. 심지어 일과를 중단하고 눈보라를 뚫고 운전해 가서는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 현상은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에게 수수께끼가 되어왔다. 어째서 사람들은 투표를 하는가? 실제의 동기가 무엇일까? 많은 대답이 있다. 우리가 투표를 하는 것은 투표를 즐기기 때문에, 만약에 투표를 하지 않으면 평판이 나빠질 것이라고 두려워해서,우리 자신을 표현하기를 원해서, 우리 팀을 응원하기 위해서,혹은 그렇게 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믿기 때문에 등등. 그러나 이러한 대답의 문제점은,투표가 그토록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무엇인지,투표를 할 권리라는 게 사투를 하다시피 해서 쟁취해야 할 것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대세계에서 우리는 흔히 다음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 즉,나는 내가 Y가 아니라 X를 선택하느냐 않느냐가 그 자체로는 사태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또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러한 점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또한 우리 모두가 Y가 아니라 X를 선택하면 사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들도 다 안다. 그렇기 때문에,브랜드와 같은 저명인사가 나서서 “X에게 투표하세요”라고 하지 않고 “투표를 하지 마세요”라고 수백만 명을 향하여 말하는 것은 놀랍고 경악스러운 일이 된다. 그 말은 그 인터뷰의 혁명적 부분이었다. 수많은 좌파 성향의 저명인사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이런저런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공개적으로 “투표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X든 Y든 그게 그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의 하나는 나의 표가 선거의 당락을 결정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누가 당선되든 중요하지 않다,즉 X와 Y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차이가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 - 물론 잘못된 논리지만 - 의 극단적 형태는 X들과 Y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X들과 Y들 사이에 ‘충분한’ 차이가 없다고 말하거나,어떤 중요한 문제와 관련해서 X들과 Y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좀더 그럴듯한 논리가 된다.

브랜드의 견해는 명확하다. “나는 ‘무관심’ 때문에 투표를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나는 절대적인 무관심 때문이거나 오랫동안 계속돼온 정치계급의 거짓말,배신,속임수에 지치고 싫증이 나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브랜드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정치시스템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그것이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가들로부터 비롯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욕구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그들은 오로지 기업의 요구에 봉사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인가? 어째서 그렇게 되는가? 민주적 선거란 권력이 민중의 손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의 이론은 대개 이러한 것이다. 즉 우리 각자는 근본적으로 자율적이며 동등한 도덕적 가치를 누린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통치,자치의 권리가 있으며,이 자기통치는 타인들이 동등하게 누리는 자기통치의 권리와 양립한다.

이러한 논리는 직접민주주의 같은 것을 암시한다. 즉,우리 각자가 예를 들어,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어떤 정책과 법률을 채택할 것인지,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기타 등등을 결정하는 데에 동등한 발언권을 갖고 참여하는 민주주의 말이다. 그러나,우리가 재빨리 깨닫듯이,현대의 정치란 매우 복잡한 것이다. 정치적 주제들에 관해서 약간이나마 숙지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시간을 다 바쳐야 하는 게 현대정치이다. 옆에서 도와주는 보좌진과 자원이 있더라도 그렇다. 그렇게 되면 직접민주주의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우리의 이해관계와 견해를 가장 잘 대변해줄 것 이라고 생각되는 개인을 뽑기 위해서 동등한 투표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우리의 대변인으로서 - 선출된 폭군으로서가 아니라 - 행동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권력의 자리에 계속 있고자 한다면 재차 선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의 대표자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우리는 투표로써 그를 배제시킬 수 있다. 이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논거이다. 이 논거의 단순성과 힘 - 그리고 실제 선거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성공 - 때문에 대의제 민주주의는 세계 전역에 걸쳐서 비길 데 없는 우월한 정치시스템이 되어왔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선거에도 불구하고 선출된 대표자들이 실제로는 자신들에게 통치를 위임해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확립된 사회에서도,선거의 공개성과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공직에 출마를 하려면 엄청난 재정적 방벽이 있고,현직의 공직자들이 큰 이점을 누린다. 기업의 돈과 텔레비전 광고는 불균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게다가 가난하고 소외된 시민들이 선거인으로 등록하는 데에는 물리적인 장애물들이 있고, 게리맨더링(기득권 정치가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정되는 선거구)은 불공정한 경쟁을 조장한다. 이 모든 난점들은 우리의 대표자들이 우리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설혹 이러한 문제들이 바로잡힌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선거 자체를 공정하게 만드는 데만 기여한다. 의미 있는 책임정치를 위해서는 단지 공개적이고 공정한 선거만 필요한 게 아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우리의 대표자들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서 우리가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감시하고 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서 능력이 부족하다. 우리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들이 과연 무엇을 하는지,그리고 복잡한 정치적 이슈들의 세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들이 우리와 세계를 위해서 정말 좋은 일을 하는지 어떤지 모른다.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은,대표자들이 많은 토론을 하고 때로는 우리 다수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하지만,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정보 불균형 현상으로 인해 많은 중요한 문제들 - 무기 제조와 지출,보험과 제약회사에 영향을 주는 정책,농기업 정책과 규제,에너지정책,금융서비스와 상품에 대한 규제 등등 - 이 결국 해당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범위한 시민적 무지와 의미 있는 책임정치의 부재 속에서 강력한 기득권세력은 우리의 대표자들을 포획하고,그 결과 오로지 강력한 기득권세력의 비위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들만이 계속해서 권력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대표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대부분 모르고,우리의 대표 자들을 뽑는 선거에서 진정한 선택이 거의 이뤄질 수 없으며,오직 우리가 선호하는 정당의 선의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우려는 전면에 부각된다. 파당적인 정보의 흐름 바깥으로 비켜서 있을 때에도 대부분의 이슈들은 복잡하고,우리가 그것들에 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도 대부분 소수의 지배적인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에 민주주의 그 자체의 근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면 이러한 난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한 가지 방식은, 규모를 작게 하는 것이다. 소규모 공동체 속에서는 집단적 행동에 따르는 문제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유기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우리는 규칙 위반자들이나 무임승객들을 찾아내고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정보 불균형 현상은 사라진다. 나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와 이슈를 안다. 우리는 그것들의 복잡성을 이해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존재한다. 만약에 우리가 어떤 이유로 대표자들을 필요로 한다 해도,그들은 우리의 친구나 이웃으로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난점은 얼마나 규모가 작아야 하는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즉 우리가 생활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감옥에 가서 가르치는 일 등을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정치공동체가 이런 방식으로 보다 작게 될 수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 중 다수는 그러한 노력에 필요한 시간도,에너지도,자원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게다가 소규모화 전략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세력들,끔찍한 일들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는 세력들의 존재를 생각하면 너무나 미약한 전략처럼 보인다. 우리는 지금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지구를 위협하고 있는 기술의 발달과 인구증가 현상을 뒤로 돌려놓을 수도 없고,나의 조그만 선택과 당신의 조그만 선택을 통해서 전 지구적인 커다란 효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바로 여기서 정치시스템이 필요한 것인데, 그러나 우리의 시스템은 망가져 있다.

정치시스템은 일종의 테크놀로지,즉 우리가 원하는 것 - 평화,번영, 자유 - 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수단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오래된 테크놀로지이다. 그 기원은 로마공화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러셀 브랜드는 “투표하지 마세요,선거시스템은 망가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새로운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의 민주적 정부들은 불완전하나마 많은 것을 잘 처리해왔다. 식품 안전과 품질 관리, 교통안전과 도로정비,건축에 대한 규제,공중보건상의 위기 대응,항공여행에 관한 규제,독점 금지와 시장경쟁에 관한 규제,병원과 보건에 대한 지원,에너지와 전자통신에서의 규제,재판제도, 공공도서관과 기초 공교육, 경찰과 소방시스템,기초 및 응용과학 연구를 위한 지원 등등.

물론 위에 열거한 항목 하나하나에 대하여,특정한 정부가 그것들을 처리하는 방식에 관련해서 제기될 수 있는 정당하고도 심각한 불평과 불만은 20개도 넘는다. 또한 현대의 정부들이 막대한 돈을 세금으로 거둬들인다는 것을 생각하면,정부가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대의제 민주주의가 지금 재앙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그것은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함에 주목하고,그럼으로써 보다 좋은 제도를 만들려고 노력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것이 등장한 이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우리는 입헌주의와 비례대표제의 꾸준한 상승을 보아왔다. 우리는 중대선거구제,비지역대표제가 유행하는 것을 보았고,어떤 곳에서는 선거운동을 공적 자금으로 행하고,행정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보아왔다. 이러한 변화는 몇몇 실질적인 개선을 이뤄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스템의 핵심을 개혁해야 할 때이다. 즉,선거제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 현대의 정책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선거를 통해서 의미 있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강력한 기득권세력이 선거를 이용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고,동시에 그들에게는 선거가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선거를 없애는 것이다. 제비뽑기로 공직자들을 선출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방식에 대해서는 역사적 선례가 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예를 들어 C. I. R. 제임스,올리버 다울런, 피터 스톤 등은 공직자들의 선출에 제비뽑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왔다. 민주주의의 발상지 고대 아테네에서는 네 개의 정부기관 중 세 개의 공직자들을 제비뽑기 방식으로 선출했다. 중세 말기와 초기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도 공직자 선출은 제비뽑기에 의해서 이뤄졌다. 좀더 최근에는,선거법 개정을 위해서 네덜란드와 캐나다에서 ‘시민의회’(무작위로 뽑힌 시민들이 해당 분야 전문가 들로부터 설명을 들은 뒤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회의체)가 이용되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2010년에 무작위로 선택된 시민들이 헌법 개정 과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는 것과 같은 범위의 제비뽑기 선출방식은 아직 시도되지 않았다.

제비뽑기가 핵심이 되는 정치시스템을 정확히 어떤 구조로 만들 것인 가에 대해서는 여러 방안이 있다. 한 가지는(내가 개발 중에 있는) 로토크라시(lottocracy)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 구성은 명쾌하다. 첫째, 현재의 미국 의회와 같이 모든 문제를 다 다루는 단일 입법기관을 두는 게 아니라,한 가지 안건을 다루는 많은 다양한 입법기관들(예를 들어,각각 농업 혹은 보건관리에 집중하는)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상임위 원회나 행정기구들 속에 존재하는 분과들처럼 20개 내지 25개의 입법기관들을 만들 수 있다. 즉,농업,상업,소비자 보호,교육,에너지,보건 및 복지,주택 및 도시개발,이민,노동,교통 등등.

이러한 단일 안건 처리를 위한 입법기관들은 약 300명의 제비뽑기로 선출된 사람들로 구성된다. 뽑힌 사람은 각자 3년 임기 동안 일한다. 임기는 엇갈리게 배분하여 매년 100명의 새로운 사람들이 임기를 시작하고,100명이 임기를 마치도록 설계한다. 공동체에 속한 모든 성인 시민들은 제비뽑기의 대상이 된다. 뽑혔다고 해서 반드시 공직에 봉사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상당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가족 부양과 생업이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리고 공직에 봉사하는 것이 중요한 시민적 의무를 행하는 것이며 영예스러운 일임을 인식케 하는 문화가 함양될 필요가 있다. 보통 회기 중 이 300명의 사람들은 그 회기에 처리할 한두 가지 입법 의제를 개발할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그러한 안건에 관련된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사회구성원 전체로부터 의견과 반응을 수집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새로운 법률의 제정 혹은 개정을 위하여 투표를 하게 될 것이다.

단일 안건에 집중한다는 것은 필수적이다. 특정한 문제들을 처리하려면,제비뽑기로 뽑힌 사람들의 다양한 배경을 생각할 때,보다 큰 지식과 관심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입법행위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 아마추어라는 사실도 참작해야 한다. 제비뽑기에 의해 뽑힌 대표자들은 오늘날의 전형적인 대표자들보다 해당 안건에 대해서 보다 많은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성의 대의제에서는 대표자들이 그들의 시간을 하늘 아래의 모든 문제를 학습하는 데 써야 하고,동시에 끊임 없이 돌아다니면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고,재선을 위한 모금에 시간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제비뽑기시스템에서는 대표자들은 -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 그들이 무작위로 뽑힌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공동체를 비례적으로 정당하게 대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어떤 특정 구성원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질 필요가 없다. 그 대신에 그들은 우리와 같은 출신 배경의 보통시민들이되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갖게 되고,당면한 구체적인 과제에 대해서 배우고 숙고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어떠한 순수한 제비뽑기시스템은 존재해본 적이 없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작위로 뽑힌 대표자들은 무능을 드러내거나 쉽게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마도 몇몇 소수가 토론을 지배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또한 정책결정을 위해서 초대된 전문가들이 모두 매수되어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기업 친화적인 논리로 설득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입법기관이 정부의 다른 부서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할 것인지 등등 어려운 문제도 있다. 정책결정,예산안 편성,과세,정책 시행 둥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현재의 시스템이 갖는 기능부전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상대적인 개선을 생각해야지 완전무결한 것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제비뽑기시스템은 현재의 시스템보다 많은 장점이 있을 것이다.

가장 분명한 장점은 정치의 부패를 막고,대표자의 선출에 개입되는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작위로 뽑히고,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거기에는 자연히 강력한 기득권세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후보자들이 선출되도록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재선을 위한 모금의 필요도 없기 때문에 대표자들이 매수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은 한결 쉬운 일이 된다.

제비뽑기시스템의 또하나의 장점은 보다 다양한 의견그룹을 결집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 구성원들의 견해와 이해관계를 보다 충실히 반영할 수 있게 된다. 공동체로부터 사람들이 무작위로 뽑히기 때문에,성공적으로 선거운동을 하여 당선된 대표자들보다 훨씬 더 그들은 이념적으로,인구학적으로,사회경제적으로 사회 전체를 대변 할 가능성이 높다. 참고자료로 제시하자면,미국 하원의원 중 44%는 100만 달러 이상의 돈을 갖고 있고,82%는 남성이고,86%는 백인이며,절반 이상이 변호사나 은행가들이다. 최근 스코트 페이지와 루 홍이 내놓은 실증적 연구는, 지적으로 보다 우수하고 숙련된 단일 의견그룹이 내리는 결정보다 다양한 의견그룹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이 보다 낫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들은 자신들이 쉽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고, 장기적인 과제나 혹은 해결해 봤자 인기를 얻기 힘든 문제들은 무시하거나 뒤로 미루기 쉽다. 이러한 소홀함은 유권자들의 무지 속에서 이루어지고,선거제도로 말미암은 단기 실적주의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제비뽑기시스템은 이러한 문제를 회피할 수 있게 해준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직면한 가장 긴급한 이슈는 기후변화일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해결을 요하는 매우 복잡한 집단적 정책결정의 문제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상황은 수십 년 후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가들은 이러한 장기적 문제를 위해서 자신들의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희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취해야 할 명백한 조치가 있을 때에도,선출된 공직자들의 다수는 당장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무작위로 뽑힌 사람들은 이와 같은 왜곡된 계산들 사이에서 움츠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기후변화나 혹은 우리의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무수한 안건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면,제비뽑기로 뽑힌 대표자들은 금주 혹은 다음 주의 모금 문제 따위의 너머를 내다보며 행동할 것이다.

이처럼 급진적인 정부 재설계의 과제는 유토피아주의라는 비난과 함께 일반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그러나 여타 테크놀로지의 경우처럼 선거제 대의민주주의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우리가 심리학,경제학,역사,정치학,법학,철학에서 배운 것을 비판적으로,조심스럽게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개혁 노력에 수반될 위험들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 20세기의 가장 끔찍한 재앙들 중 몇몇은 정치적 설계 프로젝트가 잘못됨으로써 빚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스럽게 걷고,조금씩 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냥 멈춰 서 있어서는 어디로도 갈 수가 없다.(김정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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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녹색평론


  1. 알렉산더 게레로(Alexander Guerrero) - 펜실베이니아대학 조교수. 철학,의료윤리,보건정책 전공. 이 글의 출처는 런던에서 발행되는 웹매거진 Aeon(20l4.1.23.)이다. (1)

녹색평론/140/제비뽑기 정치 (2015-08-24 20:13:14에 MinsooKim가(이) 마지막으로 수정)